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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 Woohyuen

 

 

 

 

바느질, 10분.

 

요리, 30분.

 

축구, 일주일.

 

필사, 5분.

 

전통무술, 1년.

 

...

 

지상, 4년.

 

 

 

 

* * *

 

 

 

 

 

"안 할래."

 

 

 

 

 

 안 할래, 안 먹을래, 안 들을래, 안 외울래, 안 앉을래, 안 치울래, 안 읽을래, 안 뛸래… 차우현이 동그랗다 못해 땡그란 눈으로 그리 말할 때쯤이면, 그 앞에 서 있는 이들 중 열에 아홉은 이마를 짚고 한숨을 쉬었다. 그중 가장 많은 순간을 차지한 차우현의 아버지는 한국어의 부정 접두사 '안'이 그리 다양한 말에 붙을 수 있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다. 이왕이면 경험으로는 알고 싶지 않았던 지식이었다.

 

 

 

 차우현은 어릴 때부터 인내심이나 끈기라고는 전혀 없었지만, 호기심이나 고집만큼은 대단해서 하고 싶은 대로 하지 못하면 곧바로 눈물을 흘리며 떼를 썼다. 소리가 작거나 어색하지도 않아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전부 돌아볼 정도였다. 그럴 땐 어떤 말을 해도 듣질 않다가도,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해주겠다고 하면 귀신같이 울음을 그치곤 웃었다. 그러나 8살이 될 즈음에는 그 눈물에 아무도ㅡ쌍둥이인 우연조차도ㅡ 속지 않았기 때문에 울며불며 떼를 쓰는 것은 그만뒀다. 정말, 끈기라고는 하나도 없는, 군더더기 없는 포기였다.

 

 

 

 게다가 짧은 인내심과 끈기만큼이나 미련도 거의 존재하질 않아서 한 번 돌아선 마음은 좀체 돌리질 않았다.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거나 싫증이 나면 그게 무엇이든 손을 놓아버렸다. 차우현의 부모와 조부모는 달래고 혼내고 타이르기를 반복하다 '책임론'을 집중적으로 교육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차우현이 착한 아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저 아주 조금, 아주아주 조금 끈기가 부족할 뿐이라고. 어린아이는 다 그런 거라고. 그걸 올바르게 가르쳐서 엇나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양육자의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모두가 그렇게 생각한 것은 아니었고, 그 중 차우현의 고집과 싫증에 가장 많은 피해를 보았던 차우연은 딱 차우현만큼이나 어렸다. 그리고 딱 차우현만큼 고집이 셌고, 차우현보다 조금 더 끈기가 있었다. 차우연은 차우현이 자신과 꼭 닮은 얼굴로 눈을 땡그랗게 뜬 채 '싫어. 너나 해.' 라는 말을 하자마자 손에 들고 있던 빗자루를 차우현의 어깨로 던졌다. 그리고 장장 15분 동안 차우현보다 조금 더 끈기 있게 배운 무술로 차우현을 때렸다. 그러나 차우현 또한 배운 것은 마찬가지였고, 때린다고 가만히 맞을 성질은 아니었으니 마구잡이로 얽혀 난전이 되어버리는 바람에 온 어른들이 다 뛰어와서 둘을 떨어뜨려 놓았다. 마지막까지 둘은 사납게 서로를 공격했으며, 차우현보다 머리가 더 길었던 차우연이 차우현의 손에 잡힌 머리를 풀지 못해 잘잘못을 떠나 싸움은 차우연의 패배로 끝이 났다.

 

 

 

 그 뒤로 차우연은 차우현을 이길 때까지 머리를 기르지 않겠다며 차우현과 똑같이 머리를 잘랐고, 그로부터 3달쯤 지난 뒤에 차우연은 손위호칭ㅡ오빠, 누나ㅡ를 걸고 차우현과 정정당당하게 결투를 신청하여 승리를 거머쥐었다. 3달 전의 승리에 기뻐 무술에 대한 자신감이 올라 전보다 더 열심히 배우던 차우현의 흥미는 그렇게 끝이 났다. 하기 싫은 것은 많았으나 하고 싶은 것은 별로 없던 차우현이 어른들의 권유에 전통무술을 배우기 시작한 지 딱 1년째 되는 달이었다.

 

 

 

 

* * *

 

 

 

 

 <우르>의 수료식을 마친 차우현은 5도시에 있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간의 공백이 무색할 만큼 변함이 없어 익숙하기도, 그간의 공백만큼이나 거리감이 들기도 하여 묘한 기분이 들었더랬다. 그리고 그 기분은 오랜만에 만난 할머니와 숙모, 사촌 동생과 한참 수다를 떨고 난 뒤 한잠 깊이 자고 일어나며 모두 날려버렸다. 잠과 대화. 그 두 가지는 차우현의 영원불멸한 호好임이 틀림없었다.

 

 

 

 잠이 덜 깬 나른한 시선이 협탁 위의 화분으로 향한 것은 습관이었고, 대충 걸어놓은 <우르>의 훈련복이 시야에 같이 잡힌 것은 무의식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이유로 <메르겐> 프로젝트에 대한 생각이 떠오른 것은… 업보였다. 업보라는 말밖에 떠오르지 않아 차우현은 몸을 뒤집어 아무것도 없는 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렇게 잠들었다 깨기를 몇 번 반복하니 하루가 다 지나갔고, 그다음 날에는 일찍 일어나 도시를 돌아다녔다. 맛있는 것을 먹고, 가끔은 사람도 만나고, 몸이 좋지 않은 할아버지를 대신해 책방을 보기도 하고, 어린 친척 동생들을 이능력으로 놀아주고… 잠을 잤다. 차우현은 마치 일과처럼 늘 비슷한 일들을 했고,

 

 

 

 지루해했다.

 

 

 

 차우현의 흥미는 매번 짧고 빈번하게 반짝였으므로 이미 일상의 무언가들은 그의 흥밋거리였었거나 애초부터 배제되어 있었던 것들뿐이었다. 가끔은 오, 하고 눈을 동그랗게 뜨며 기웃거리기도 했지만, 그것도 얼마 가지 않아 사그라들었다. 그러면서도 늘 웃는 얼굴로 여상히 다녔기에 아무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는 지루하면 잠을 자거나 시답잖은 대화를 했고 그것은 <우르>에서도, 집에서도 마찬가지였으니까. 차우현에게 '일상'은 언제나 무료한 것이었지만, 그것 하나하나에 연연해하는 것은 너무 비효율적인 일이었다. 순간순간의 즐거움을 쫓는 일은 누구보다도 자신 있었다.

 

 

 

 

* * *

 

 

 

 

 4년하고도 며칠 혹은 몇 주, 아니면 몇 달.

 

 

 

 그러나 자잘한 날들은 세어내기가 힘들고, 세어봤자 의미도 없다. 애초에 감정이라는 것이 그렇게 명확하게 생겨났다 사라지거나 끊어지는 것이었더라면 인간의 언어 사전에 치정극이란 단어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럴 시간에 과거의 한국인들이 가졌던 성姓의 분포도에 대해 알아보는 것이 더 재밌겠지. 똑같이 쓸모는 없어도 이쪽이 훨씬 낫다.

 

 

 

 오로지, 재미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가볍게 말하면 재미, 조금 더 자세히 말하자면 흥미 혹은 관심. 차우현이 무언가를 판단할 때 가장 높게 평가하는 항목이다. 쓸모나 의미가 없어도 흥미 유발만 잘 된다면 눈을 빛냈고, 숭고하거나 대단한 것이라도 흥미가 생기지 않으면 고개를 돌렸다. 단순하지만 종잡을 수 없는 기준이었다. '흥미'만큼 주관적인 기준은 드물지 않은가. 기분이 안 좋으면 무엇이든 금방 싫증 내기 마련이고, 기분이 좋으면 고루한 것에도 눈길을 주는 것이 차우현의 흥미였다. 그나마 옳고 그름을 흥미와 상관없이 판단한다는 것은 차우현의 부모와 조부모가 포기하지 않고 세뇌하다시피 교육한 도덕 윤리의 성과일 테다. 차우현이 스스로 '교육을 너무 잘 받아서 보편적인 윤리가 머릿속에 확고하게 잘 자리 잡았다.'라고 말했다는 것을 알면 그의 부모와 조부모는 기쁨의 눈물을 흘릴 것이다. 보편적인 윤리만큼이나 책임감도 그의 머릿속에 자리 잡았다는 증거나 다름없는 말이므로.

 

 

 

 차우현의 흥미는 언제나 짧은 시간 머무는 나그네와 같았고, 단연코 그는 그것을 아쉬워해 본 적이 없었다. 오히려 무언가를 오랜 시간 동안 애정하는 것을 신기하게 여겼다. 질리지 않나? 어느 순간 확 지루해지는 때가 오던데. 그런 말을 일삼는 차우현이 그의 가족을 비롯한 사람들이 그토록 그리는 '지상'이나 '전통'ㅡ혹은 근본, 기념ㅡ에 의문을 품게 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리고 그 끈기 없는 막강한 호기심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기어코 목소리를 내 말로 내뱉는다. 질문하고, 답을 듣는다. 가끔은 덧붙여서 더 말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그것은 '논쟁'이라기보단 '심층탐구'에 가깝다. 자신이 자신의 생각을 바꿀 의향이 전혀 없는 것처럼 상대도 굳이 자신의 생각을 받아들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나, 그쪽은 그쪽. 차우현의 흥미는 대체로 '탐구욕'과 맞물리는 편이었기에 납득할만한 답을 얻으면 그대로 끝이 났다. 그 어느 쪽에도 변화를 주지 않은 채로.

 

 

 

 

 

 누군가는 가족에게 지상의 하늘을 알려주고 싶어서, 혹은 미지를 탐구하고 싶어서, 아니면 그 외의 다른 이유들. 사람 수만큼 다양한 이유가 있고, 그중에 하나는 자신의 몫이었다. 그 이유가 4년 넘도록 유지되어 온 것은 대단한 일이겠지. 남 말 할 처지도 아니고, 그 와중에 '난 중간에 좀 그랬어'라고 말하는 것은 그저 치기 어린 변명일 뿐이다. 아무런 의미도, 뜻도 없는 자존심 세우기는 있던 재미도 날려버린다.

 

 

 

 그러니까, 변명할 여지 없이.

 

 

 

 <메르겐> 프로젝트는 차우현에게 가장 오래 지속한 흥미를 안겨주었고, 가장 커다란 책임도 안겨주었다.

 

 

 

 그만두고 싶다고 그만둘 수 있는 지점도 아닐뿐더러, 가벼운 마음으로 왔다고 가벼운 책임만 쥘 수 있는 곳도 아니었다. 당연히 '다' 알고도 자신을 내던졌으니 원망하거나 후회할 수는 없다. 하지만 조금은,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조금은, 섭섭해해도 되지 않나. 대가를 바치고도 원하는 바를 못 이룬 것은 처음이라서, 차우현은 그것이 한동안 꽤 아쉬웠다.

 

 

 

 

* * *

 

 

 

 

 차우현은 어떤 일을 '저지를' 때 당연하게 그에 응당하는 '책임'을 가늠한다. 더는 억지와 호소로 욕망을 채울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정당한 대가를 치르고 원하는 바를 이루려는 것이다. 13살의 차우현은 그 셈에 능하지 못해 제삼자의 눈으로 보기엔 부당거래라고 할 만큼 균형이 기울어졌었다. 만류해보았지만, 들어먹지를 않았다. 하지만 그 과거를 곱씹으며 후회하지는 않는다. 부당거래라도 서로 대가를 지불한 이상 거래가 성립된 것은 맞으니까. 대가와 욕망을 참작해 균형을 가감하는 짓은 지금도 마찬가지니까. 그러니 어린 마음에 지상을 '구경해보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장기 대형 프로젝트에 자기 자신을 기꺼이 밀어 넣은 것은 우습지도, 멍청하지도 않은 결단이었다. 지상을 볼 수 있다면 지루할 만치 긴 시간 동안 시키는 대로 구르는 것은 한 번쯤 해볼 만한 일이지 않나, 하고.

 

 

 

 

 학교에 가만히 앉아있는 것보다 재미없기는 힘들 것이라 생각했고, 사람이 모이는 곳은 조용할 수가 없으니 흥미로웠다. 실제로도 차우현은 잘 적응했고, 너무 잘 적응해서 너무 잘 놀았다. 의외로 재밌는 이론 과목들이 많아서 공부도 나름 재밌어했다. 그것이 성적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낙제가 아니라면 OK라는 교육방침 아래서 자란 차우현에게는 낙제 점수만 여유롭게 비켜나면 다 좋은 점수였다. 좋은 게 좋은 거고 좋으니까 좋은 거지. 말장난하는 듯한 이 한 문장이 그대로 그의 태도를 보여주었다.

 

 

 

 그의 모든 행위는 전부 ㅡ대가같지 않은 미미한 것이라도ㅡ어떠한 대가와 책임을 가늠하고 있어서 차우현은 어떤 말을 들어도, 어떤 행동을 당해도 자신이 내키지 않는다면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는다. 오히려 원하지 않는 변화에 싫증을 내 거나 할 뿐이다. 차우현은 한결같다. 여전하고, 여상하다.

 

 

 

 대가를 치르고도 이루지 못한 흥미에 더 이상 관심은 없어도 그의 삶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소소하게 변한 것이 있다면 새로운 인연이나, 혹은 새롭게 알게 된 다양한 것들. 그런 것들로 지난 시간이 채워져 있으니 아주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재차 말하지만, 순간순간의 즐거움을 쫓는 것은 누구보다도 자신 있었다. 기약 없는 기다림이 막막하지는 않았다. 애초에 기약 없는 기다림이 된 순간, 차우현은 그것을 기억 저편에 묻어두기로 했으니까. 언젠가 부당거래가 업보로 돌아오는 날이 온다면…

 

 

 

 

 …결코 좋은 반응은 하지 않겠지만,

 

 뭐…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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