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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ik Hill

 

 

 

 

 

“미안해 정말! 빼보려고 해도 방법이 없더라고, 대신 돌아가는 즉시 만회 해줄 테니까!

하필 하나 뿐인 조카가 수료하고 돌아오는 이 중차대한 날에 일이 터질 건 뭐람!”

 
 
 

“됐다고 했잖아. 어설픈 생각 말고, 해야 할 일이나 잘해요, 몸조심하고.”

 
 
 

“지금 네 말투! 너희 할아버지랑 똑같아.”

 
 
 
 
 

패드 너머의 목소리는 제가 열 댓살 시절, 함께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여전하게 유지되어왔다.

과장과 활기, 그리고 애정이 넘치는 그 목소리를 기기 너머로 듣고 있을지언정, 어쨌거나 실감은 되더라. 자신이 집에 돌아왔다는 것은.

몇 차례나 괜찮다고 말했는데도 잔정이 많은 제 살붙이는 이런 불가피한 상황에서도 꼭 감정을 다뤄주는 말을 하곤 했다.

어린아이도 아니었고, 새삼 서운해할 만한 일도 아니 건만, “하늘도 무심하시지!” 농조와 과장으로 그리 말하는 것에,

‘하늘 아래 살아본 적도 없는 사람이 말은 잘 한다니까.’, 하고 실없는 농조를 뱉었지.

 
 
 

“아무렴 어떠니, 나는 아니어도, 너는 곧 하늘 아래에 서게 될 텐데.”

 
 
 

“이만 가봐야겠다. 내일 보자.” 로 말을 맺는 그녀와 연결이 끊어지고서야, 몇 년 간 뜸한 주인으로 인해 살풍경 해진 방에는 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너는 곧 하늘 아래 서게 될텐데.’ 별스럽지 않은 그 말에 또 새삼 실감이 되더라.

 

4년 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았을 시간을 자신이 맺고 돌아 왔다는 걸,

그걸 상기하고 나니 곧 이어 떠오르는 것은 제가 해두기로 예정해둔 한 가지의 일이다. 

 
 
 
 
 

 

 

짐을 바닥에 내려놓자마자 향한 곳은 약간의 먼지가 내려앉은 자신의 책상 앞이다.

 

그 옆의 책꽂이의 가지런히 나열된 책들 중 가장 두꺼운 책을 찾아 빼내어 손끝의 감각을 따라 펼쳐낸 페이지 사이에는,

오랜 시간 여러 차례 매만진 듯 끄트머리가 닳은 사진 한 장이 있었다. 다정과 애정으로 웃는 낯을 걸고 있는 한 사람이 곱게 찍혀있는 사진 한 장.

 

사진 속 인물은 눈에 사그릴 만큼 행복한 웃는 낯을 하고 있건만,

오랜 시간을 건너 그것을 내려보는 자신의 시선은 약간 가라앉는다.

도리 없이 그렇더라.

 

가만히, 한참을 그 사진 속을 응시하던 녀석은 좀체 떼지지 않을 것 같은 운을 뗀다.

 
 
 

“오랜만이죠.”

 
 
 

답지 않은, 나지막한 혼잣말이 적막에 내려앉아 쌓인다.

이 4년을 맺고 돌아오거든, 이 사진을 꼭 고운 액자에 옮겨 넣어 주기로 결심했었다.

아무런 의미가 없을지언정, 자신에게는 필요한 일이기도 했다.

그래, 마치 스스로 결의를 다지는 의식처럼. 한 챕터가 끝이 난 소설의 끝에 마침표를 찍는 것 처럼.

애초에 타인이 의미 없다 평하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을 그런 행위.

 
 
 
 

“오래 걸려 미안해요.

…나는 꽤 시간이 필요 했어요. 당신을 다시 마주 하는 것 말이에요.

사람들은 아직도 당신 이야기를 해요. 일상 속에서 이따금 당신을 떠올리고,

당신의 발자취에 같은 것에 대해 말하고, 그리움을 나누죠.

 
 

그 사람도 여전할껄요. 늘 상 당신 자리에는 새 꽃이 놓여져 있어요.

 

내가 놓는 것보다 늘 먼저요. 알고 있어요?“

 
 
 
 

과장 이라고는 없을 명백한 사실 만을 입에 올리건 만, 아니 자신은 버릇처럼 늘 상 그렇게 하곤 했지만,

여 즉 사진 속 인물에 대한 그리움을 입에 올리는 것은 속이 타는 일이었다. 녀석에게는…,

하지만 굳이 그만두지 않는 것은, 이것을 감내하는 것 또한 자신의 몫이기 때문이었다.

 

결심하지 않았던 가,

타는 속에 걸음이 멎을지언정, 절대로, 뒤로 가거나 멈추지는 않을 거라고.

 
 
 

“…아직도 당신이 필요하거나, 그리운 사람들이 많아요.”

 
 
 

손에 익은 버릇처럼 사진 끝을 매만지며, 한참을…, 한참을 닿을성싶지 않은, 아니 결코 닿지는 말을 얼마나 내뱉었을까.

이러한 순간이면 이전부터 도리 없이 쌓이는 제 심정 속 짐을,

곧 서랍 안 빈 액자를 꺼내어 차근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케케 묵었던 사진을 끼워 넣으며 달래고 또 달랬다.

 

자신이 목적 했던 것 중의 하나의 끝을 온전히 맺고 나서야 묵혀둔 숨을 내뱉는다.

묵은 숨에 서려져 나온 것은 그대로 내려앉아 적막의 일부가 된다.

하지만, 녀석은 그것을 걷어내듯 고갤 들었다.

 
 
 
 

"하지만, 나도, …나에게도 있어요.

 
 

내 긍정을 봐주는 사람도, 내 고됨을 알아가길 원하는 사람도…

내가, 내가…, 걸음을 멎길 바라지 않는 사람들도요. 

 
 

물론…, 솔직히 말할게요. 게 기대하지 않았어요."

 
 
 
 

지난 4년 간, 녀석은 제 책임을 다하고 필요를 증명하기 위해 그곳에 입소했지만,

자신이 얻고자 했던 범위 이상을 얻었다. 아니, 얻었다기보다는 어느새 쌓여있더라.

 
 

자신에게 기꺼이 선함과 긍정을 나누어주려는 사람들을 기대하진 않았었다. 자신은, 자신의 몫을 하기에도 늘 바빴었고,

타인에게 이유 없는 긍정보다는 자신에게 비추어진 상대에 대한 견해 만을 입에 담았으며, 자신이 상대에게 해줄 수 있는 범위 만을 입에 올리곤 했다.

요컨대, 진실과 진심으로 대했을지언정, 결코 자신은 이유 불문의 공감을 뱉어주거나, 살갑거나 따뜻한 언동을 비치진 못했던 것을 안다.

 
 

좀체 나아지지 않는 자신의 모자란 부분을 확실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런 자신에게 어째서 손에 넘칠듯한 긍정이 주어졌는지,

…솔직히, 아직도 잘 알 수가 없는 부분이기도 했다.

 
 

애초에 자신은 타인의 평에 마냥 목을 매지 않으려는 축이었다. …그것에 너무나 귀 기울이는 것이 때론 사람을 너무나 나약하게 만들곤 했으니까.

더해, 어디 까지나 제가 책임을 쫓거나 필요를 증명하는 일은, 자신의 고집이었고 어떤 부분에서는 아집 이었다.

그러니 녀석은 타인이 자신에게 쌓을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것이 언제나 제 불안을 만들곤 했다.

 
 

이제 와 고백하지만, …오만했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누군가의 슬픔이나, 누군가의 상실이 되지 않았던 시간 속에서

녀석은 도리 없이, 충분한 위로를 받았다. …자신은 늘 이 위로를 경계 했었지만

이 위로가 자신을 나아가게 하기 위한 동력 중 일부가 될 거 라고는

 
 

단언하건데, 감히 기대하지 않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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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분간 또 못 보겠네요. 수료도 마친 마당에 우습지만, 예정해둔 일이 또 바쁘거든요.

당신이 했던 일에 발 좀 담아보려고 해요. 고모는 오자마자 또 어딜 가느냐고 난리 겠지만.

 
 

여하간...그래, 다음에 봐요."

 
 
 
 
 

부러 가벼운 투로 말을 맺지만,

끝내 제 주인을 찾은 양 반듯이 사진이 꽂힌 액자는, 곧 서랍의 가장 안쪽에 놓인다.

 

아마도, 여 즉 마주할 용기가 부족한 탓 일 테니,

이로부터 이 액자가 책상 위로 올라가 볕을 받을지는 아무도 가늠할 수 없을 것 이다.

 
 
 
 

"... ...그땐, 너 나은 이야기를 해줄게요."

 
 
 

"약속해요."

 
 
 
 
 

하지만, 언젠 가는 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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